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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부마항쟁…‘그날의 기억’ - 문화체육관광부 국민소통실
  • 기사등록 2019-10-11 10:4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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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마민주항쟁은 박정희 정권의 유신체제에 반대하며 1979년 10월 16일부터 닷새간 부산과 마산 일대에서 퍼진 반독재 민주화 운동입니다.  부산과 마산의 첫 글자를 따 ‘부마항쟁’이라고 명명됐지요.


  당시 시위는 부산대 학생과 시민들이 주축이 돼 시작됐고, 사태가 확산되자 임시 휴교령, 비상 계엄령, 위수령 등이 잇따라 선포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1560여명이 연행됐고 군사 재판에 회부된 시민만 120여명에 달했습니다. 부마항쟁의 민주화 열기는 이후 10·26을 촉발해 유신붕괴를 앞당겼고, 5·18과 6월 항쟁으로 이어진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정책브리핑에서는 정광삼 전 부산일보 사진기자, 김탁돈 전 국제신문 사진기자와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의 협조로 40년전 그날을 사진과 함께 정리했습니다. 


#부마민주항쟁 당시 부산 중심가의 시위대


       


  부마민주항쟁 당시 부산 중심가를 행진하던 시위대의 모습을 정광삼 전 부산일보 사진기자가 촬영한 사진이다. 촬영 시점은 1979년 10월 16일, 또는 17일로 추정된다. 정 전 기자는 사진 촬영 장소를 부산 중구 광복동 일대로 증언하고 있으나 인근의 상점가의 모습을 감안할 때 광복동에 인접한 오늘날 중구 동광동 1가에서 중앙동1가 방면을 향해 촬영한 것으로 추측된다. 당시 부산 중심가인 서구 · 중구 · 동구 전체가 시위대로 가득 찼으며 대다수는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유신독재체제 성립 이후 일어난 시위 대부분은 대학생이 중심이었고 일반 시민의 참여는 미비했으나 부마민주항쟁의 경우 회사원, 노동자, 상인, 접객원, 실업자 등 평범한 시민들이 대거 시위에 참여해 독재정권에 큰 충격을 안겨줬다. (사진촬영 : 정광삼 전 부산일보 사진기자,사진제공 : (사)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부마민주항쟁 당시 온천장을 통과하는 시위대 


       


  부마민주항쟁은 1979년 10월 16일 부산대학교 학생들의 교내 시위를 계기로 일어났다. 부산대학교 학생들은 경찰의 저지를 뚫고 캠퍼스를 빠져나와 시내로 진출했으며 시민들이 이에 합세해 대규모 항쟁으로 발전했다. 이 사진은 부마민주항쟁 당시 부산대 캠퍼스를 빠져나와 금정구 온천장을 통과해 시내로 진출하는 학생들을 촬영한 것이다. (사진촬영 : 김탁돈 전 국제신문 사진기자, 사진제공 : (사)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부마민주항쟁 당시 부산교대 앞에서 시위대를 저지하는 경찰 


       


  경찰은 부산대학생들이 중심이 된 시위대의 시내 진출을 저지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사진은 부산교대 인근에서 시위대를 저지하는 경찰의 모습을 찍은 것이다. (사진촬영 : 김탁돈 전 국제신문 사진기자, 사진제공 : (사)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부산 시내에 대기중인 경찰기동대 


       


  부마민주항쟁이 발발한 10월 16일부터 경찰은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지만 시위대의 규모는 경찰만으로 진압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졌다. 사진은 부마민주항쟁 당시 부산 시내에서 시위진압을 위해 대기중인 경찰 기동대를 촬영한 것이다. (사진촬영 : 김탁돈 전 국제신문 사진기자, 사진제공 : (사)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해 도로를 질주하는 경찰 페퍼포그차 


       


  부마민주항쟁이 한창이던 10월 17일 밤 중구 광복동의 도로를 질주하는 경찰 페퍼포그 차량을 촬영한 것이다. 페퍼포그 차량이 내뿜는 최루가스도 시위대를 무너뜨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사진촬영 : 김탁돈 전 국제신문 사진기자, 사진제공 : (사)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부산지역에 내려진 계엄포고문을 읽고 있는 시민들 


         


  10월 18일 0시를 기해 부산 지역에 계엄령이 내려졌다. 이에 따라 부산 지역에 주둔하는 군 병력과 공수부대들이 시위 진압에 투입되기 시작했다. (사진촬영 : 김탁돈 전 국제신문 사진기자, 사진제공 : (사)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부산 중심가에 배치된 계엄군의 전차


       


  계엄령 직후인 10월 18일경 부산 시청 인근에 배치된 계엄군의 전차를 찍은 사진이다. 전차 외에도 공수부대와 해병대가 부산 곳곳에 배치돼 항쟁을 진압하기 시작했다. (사진촬영 : 정광삼 전 부산일보 사진기자, 사진제공 : (사)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국제신문사와 부산 MBC가 입주한 부산 국제회관 건물에 배치된 계엄군 


       


  부마민주항쟁 당시 서울은 물론 부산, 마산 지역의 주요 언론사들도 극심한 정부의 언론통제로 인해 항쟁에 대해 제대로 보도할 수 없었다. 계엄령이 내려진 뒤 계엄군이 언론사에 배치돼 언론통제는 더욱 강화됐다. 사진은 국제신문사와 부산MBC가 입주한 부산의 국제회관 빌딩을 경비하는 계엄군을 촬영한 것이다. (사진촬영 : 김탁돈 전 국제신문 사진기자, 사진제공 : (사)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계엄군이 배치된 동아대학교 


         


  부산대와 함께 항쟁에 적극 참가한 동아대학교에도 계엄령과 함께 공수부대가 배치됐다. (사진촬영 : 김탁돈 전 국제신문 사진기자, 사진제공 : (사)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석방되는 부마민주항쟁 참여자들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을 계기로 많은 수의 부마민주항쟁 관련 수감자들이 석방됐다. 그러나 이들 중 일부는 1980년 5.17 비상계엄 확대와 함께 다시 체포돼 고통을 겪었다. (사진촬영 : 김탁돈 전 국제신문 사진기자, 사진제공 : (사)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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