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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대산미술관 김철수 관장 - 불모에 발화(發花)시킨 아름다움에의 의지, 다시 예술의 기능을 성찰해보다
  • 기사등록 2013-08-06 15:38:16
  • 기사수정 2013-08-06 15:5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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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의 구도만 보자면, 번거로운 세상에 등한한 채 유유한 강물과 적당한 경사의 언덕에 꽤 낭만적 비전으로 그려진 딜레당트(dilettante)의 정원 같다. 하지만 이곳은 한때 흰쌀을 대신해 헛헛한 이들의 배를 채워주던, 접근이 만만한 음식이면서 만족도는 매우 높았던 라면을 생산하던 공장이었다.

 

대단위 산업단지가 즐비한 창원에서, 공장을 지탱하는 철제빔들의 날카로움이 무람하게도 낙동강변에 단아하게 자리 잡은 대산미술관 이야기다. 그런데 무언가 비유적인 연관성이 느껴지지 않는가. 밥을 대신해 허기를 채우고 혹은 색다른 미각을 선사했던 라면의 쓰임새, 그리고 삭막함이나 획일적인 이미지로 낙인찍힐 공산이 큰 공장도시에서 메마른 겨울의 가습기처럼 정서를 분무하며 지역민들에게 미()에의 안목을 차근차근 이끄는 대산미술관의 역할 말이다. 이쯤 되면 대산미술관은 스스로의 탄생목적에 완벽히 복무한 셈이다.

 

창원시 유일의 등록 사립미술관, 지역민들에게 일상의 심미안을 새겨 넣다

봄 햇살이 미술관 지붕과 야외 공원의 조각들을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있던 지난 5월 중순,대산 미술관 방문자의 귓가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또르르 또르르 투명하게 굴러왔다. 호기심에 얼른 화사한 의성어의 진원지를 찾아들어가니, 매주 토요일마다 진행 중인 토요꿈다락학교의 어린이들이 자전거 길을 주제로 한 타일그림을 보며 저마다 품평회를 하고 있었다. 타기에는 너무 아까운 들꽃 자전거부터 신묘한 재주를 부릴 수 있는 거대한 외발 자전거까지 아이들만의 상상력이 풍성하게 집합해 있었다.

 

토요꿈다락 학교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지원하는 프로젝트에 선정되어 운영 중인 프로그램이다. 뿐만 아니다. 수요일에는 특별히 미술에 관심 있는 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학교 미술교육이 채워줄 수 없는 전문적인 미술 체험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예술+(더하기) 프로그램에서는 아이와 학부모, 마을회관에 모인 시골 어르신들까지 누구나 미적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접근하기 쉬우면서 흥미진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구상한다.

 

요정도의 몇 개 프로그램 소개만으로도 대산미술관의 존재성과 역할을 짐작할 것이다. 바로 중앙중심의 문화 환경에서 소외받을 수밖에 없는 지역민들에게 소박한 예술체험을 도와주는 것이다. 너무 거대하고 숭고해서 미적 체험 참가자를 주눅 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곁에서 그들의 일상에 윤활유가 될 만한 예술적 경험을 접촉시켜주는 것이다. 그래서 점차 어느 누구라도 가지고 있지만 내밀하게 숨겨져 있는 아름다움을 향한 감각을 불러내고, 그 감각이 자연스럽게 연마되어 각자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중요한 기여를 한다면 더 없이 감사한 일이다. 공공미술관도 아닌 사립미술관의 역할이기 때문에 더욱 의미심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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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 부재의 암울 속에서도 꺾이지 않던 개관 의지

OECD 가입을 자축하는 샴페인의 거품이 가라앉기도 전에 온 나라 안을 쓰나미처럼 휩쓸고 간 IMF 외환위기의 여파는 1999년에도 유효했다. 사람들은 불안한 내일을 초조해하며 지출을 줄였다. 밥을 먹고 사는 생존이 가장 중요한 화두일 수밖에 없던 시기였다. 그런데 이 와중에 사람은 빵만으로는 살수 없다는 잠언을 실천하려는 무모한 사람이 있었다. 김철수 대산미술관 관장. 지금은 미술관 관장이라는 직함이 추가됐지만, 당시는 창원문성대학 산업디자인학과의 젊은 교수였다. 그는 경제 위기의 한 복판에서 오히려 역공을 펼친 것이다.

 

주위의 걱정과 만류를 뿌리치고 낙동강변의 유등마을에 있던 라면스프 공장 두 동을 인수해 미술관으로 재창조하는 작업에 돌입했다. 외부의 도움도 받지 않고, 서예가이자 붓을 만드는 필방가내수공업을 하셨던 할아버지, 아버지의 혈통 그리고 화가의 길을 걷다가 요절한 형이 원했던 창작자의 산실이자 시민들의 영혼의 안거지가 될 곳에 대한 열망과 그 자신 텍스타일 미술을 하면서 축척해 온 미술인으로서의 자긍심만이 단단한 밑천이 되었다.

 

가뜩이나 예술 활동이 예술가에게 최소한의 세끼 밥도 해결해주지 못하는 열악한 우리 풍토에서 사재를 털어 중앙도 아닌 지방, 그것도 외곽에 사립미술관을 짓는 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는 미술관 설립부터 지금까지 15년 동안 그가 고단하지만 절망하지 않고 부단히 도전해온 역정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그 자신 ‘10억을 들이면 1억이 손에 들어왔다는 간단한 비유로 그간의 고투를 담담히 표현해 내지만, 예술 진작(振作)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성취의지가 없었다면 곤란했을 일이다.

 

특히 김 관장은 국내에서 그리 주목받지 못하는 섬유미술을 꾸준히 기획하고 전시하면서, 한때 경상도 지역에서 산업 발전의 주역을 톡톡히 해내던 섬유 산업에 예술적 경의를 표하는 일에 매진해 왔다. 그 자신 섬유미술을 전공한 작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지리적 이유로 문화적 혜택에서 소외받는 시민들에 대한 김철수 관장의 안타까움과 진정성이 왜곡되어 그가 함께하고 싶었던 주민들에게 오히려 냉대를 받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진심은 마침내 그 고스란한 대가를 받았다.

 

대산 미술관은 이제 전국 규모의 기획전시를 할 수 있는 역량과 위상을 가진 미술관으로 도약했고, 관람을 위해 이웃 밀양과 김해, 진영 신도시는 물론 서울, 경기, 전남 등에서도 원거리 관람객들이 찾아온다. 미술관 교육프로그램은 항상 성원 속에서 정원 초과이이기 일쑤다. 2005년에는 대산미술관을 후원하는 예술애호가들의 모임인 120여 명의 신르네상스 후원회가 조직돼 물심양면의 도움이 되고 있다. 경남메세나 협의회에서는 대기업 결연매칭 사업으로 STX조선해양의 후원을 받고 있다. 섬유미술 작가로서 뿐만 아니라 유능한 예술경영자로서의 김철수 관장의 진면목이 발휘되고 있는 것이다. 15년 간 89회의 기획전시와 홈페이지 조회수 28만건라는 성과가 그 방증이다.

 

부유한 예술애호가의 사치품 되기보다 청년 작가들의 인큐베이팅에 기여하고파

대산미술관은 창원시에 있는 유일한 등록 사립미술관이자, 1 종 허가의 자격을 가진 미술관이다.국가나 기관이 운영하는 종합박물관을 제외하고 이러한 자격을 가지려면, 120점 이상의 미술 소장품과 1인 이상의 학예사 그리고 연구실, 전시실은 물론 도서실, 강당 중 1개 시설을 구비해야 한다. 대산미술관은 이런 조건을 모두 충족한 공신력 있는 미술관이란 뜻이다. 회화부터 서예, 판화, 섬유, 염색, 조각에 이르기까지 380여점의 소장품과 해마다 5회 이상 특별전과 기획전을 개최하며 미술관으로서의 본연에 흐트러짐이 없다.

 

80평 규모에 이르는 2개의 전시실과 디자인실, 조형실, 야외 전시실 등 총면적이 2560(800) 마을 공동주차장 1000평으로 구성되어 있다. 유수의 대기업에서 운영하며 최고가의 작품을 소장하고 거래하는 대규모 미술관에 비한다면 아주 작고 소박하달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산미술관은 부유한 애호가들의 축재품(蓄財品)이나 과시용의 거래물이 되기보다, 예술 표현을 갈구하는 젊은이들에게 진정한 동반자가 되길 선호한다. 2010년부터 3년간 운영하고 있는 레지던스 프로그램은 재능 외에는 어떤 수단도 없는 청년 작가들이 창작 열의를 마음껏 분출할 수 있도록 전폭적 지원을 도모해오고 있는데, 2012년 김이경이창훈 두 작가가 청년작가 공모전에서 대상과 우수상을 나란히 수상한 것은 근래의 쾌거였다.

 

예술지원의 보답은 고액의 거래가 아니라 이렇게 순수한 예술적 성취의 희열로 상쇄되는 것이다. 2011년부터는 매년 가을 낙동강 다원 예술제를 개최해오고 있다. 섬유미술부터 환경미술까지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전시는 물론, 음악 무용 등의 무대공연이 성대하게 병행되는 행사이다. 든든한 기업 스폰서 없이 대산 미술관의 개별적 역량만으로 이끌어오는 것이라 더욱 자긍심을 느끼고 지속의지 또한 강하다.더불어 왕성한 창작력과 예술적 도전에 패기기가 넘치지만, 작가적 발표의 장과 기회가 협소한 지역작가를 발굴하고 안정된 창작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것 또한 대산 미술관이 하는 일이다.

 

87개관이 회원으로 있는 한국사립미술관 협회에서 역량있는 신진작가를 찾아내 세계무대에 데뷔시키는 프로젝트인 KAP를 통해, 대산미술관이 추천해온 작가들이 2011년부터 매년 해외에서 자신들의 예술적 재능을 발현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노력의 결과다. 이런 성과에 비하면 대산미술관과 김철수 관장이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받은 박물관미술관발전기여 표창이나 디자인 육성공로로 수상한 경남도지사 표창 등은, 무척 영예롭지만 오히려 아주 작은 부산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작은 이웃에게 진정한 기쁨 주는, 미술관의 공공적 순기능을 생각하다

도시빈민들의 하룻밤 침실이었던 몰락한 공장이나 폐광, 쓸모가 없어진 기차역 등이 지역주민들을 위한 훌륭한 박물관이나 미술관으로 재탄생하는 사례를 비교적 많이 접할 수 있다. 영국 북부지역의 글래스고(Glasgow)’ 지역이나 케이츠헤드등은 몰락한 지역을 시민들을 위한 공공미술영역으로 확장시킨 훌륭한 예이다. 런던엔 화력발전소를 미술관으로 개조한 곳도 있다. 프랑스의 오르세미술관이 기차역을 리모델링했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아는 사실이다. 이 밖에도 수없이 열거할 수 있다.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들 대부분의 쇠락한 지역이 근사한 예술 중심지역으로 재조성할 수 있었던 힘 중에 , 정부나 시 위원회 등 공적 기관들이 참여해 이들을 밀어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산미술관은 순전한 개인의 의지로 폐쇄된 공장건물을 미술관으로 재탄생시켰다. 그러기에 소외된 이웃, 상대적으로 문화적 방치 상태에 있는 아이들에게 더 애정이 갈 수밖에 없다. 소외지역 복지관이나 요양원을 찾아가 현장에서 진행하는 미술 프로젝트 반짝반짝 중리주공아파트’ ‘찾아가는 힐에코뮤지엄’, ‘하나되는 다문화 여행등이 그 대표적 활동들이다. 따로 예능학원을 다닐 수 없는 농촌지역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해서는 무료 미술교실을 지속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대산미술관은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또 하나의 지향은, 미술의 공공성을 염두에 두고 발휘하는 상상력이다. 2010부터 공공미술 활동의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는 기획이 마을 벽화사업이다. 낙동강 주변에 있는 농촌마을의 개별 특징을 추출하고 이를 재구성하여 마을 주민들과 함께 60여 군데 이상의 장소에 벽화를 그려 넣었다. 올해는 낙동강 자전거 길따라 벽화그리기사업을 마련하고 계절마다 천변만화하는 자연의 풍경과 전래동화 속 에피소드, 아이디어가 튀는 일러스트 등 40군데 이상을 더 계획하고 있다.

 

이제 대산미술관은 농촌마을에서 유난히 이채를 띄는 특별한 건물이 아니라, 마을과 고장에 안착하고 스며들어 경계 없는 어울림을 실천하고 있는 문화예술 아지트가 됐다. 김철수 관장이 바라던 편안한 영혼의 휴식처가 바로 이런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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