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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은 나의 자화상, 그 우직함의 미학에 매료됐다 - 빛과 자연의 화가, 김 남희
  • 기사등록 2013-08-18 21:56:55
  • 기사수정 2013-08-18 22: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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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김없이 올해 10회째를 맞는 Korea Professional Artist Mall festival(KPAM.대한민국미술제)가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렸다.

 

KPAM은 전업 작가들이 주체가 되어 유명화랑이나 미술관의 후원 없이 화가들 스스로 미술 대중에게 작품을 소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아트페어(Art Fair)형식의 미술 페스티벌이다.

 

개인전과 함께 중견작가 초대전 청년작가전 등 다양한 층위의 미술 흐름을 조망할 수 있다. ‘빛과 자연 시리즈를 가지고 출품한 중견 화가 김 남희의 개인 부스를 찾았다.

 

자연물을 희롱하는 빛의 풍광이 눈에 들어오다

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예술은 무엇일까. 과문(寡聞)을 무릅쓰고 단언한다면 아마도 회화일 것이다. 물론 표제음악의 작곡가들이나 문학가들도 빛을 고유의 방식으로 묘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망막에 와 닿는 의 경이를 가시적으로 잘 드러내는 것은 무엇보다 회화 장르가 아닐까. 굳이 19C 인상주의의 출현까지 언급하지 않아도 말이다.

 

화가 김 남희도 자연물에 와 닿은 빛의 자유 자재함에 주목하는 작가이다. 그녀가 뒤늦게 그림을 시작하게 된 동기도 이 을 발견하면서 부터라고 한다. KPAM에서 만난 김 남희의 그림들을 일별만 해도 그녀가 빛을 마중하고 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그런데 그 빛은 현란하거나 눈부시거나 자극적이지 않다. 자연물과 조우한 김 남희의 은 자연물의 형상을 빛의 착시에 의해 이리저리 바꿔 놓는 것이 아니라 자연물의 궁극적 자아와 조용히 마주 앉아 합일한 느낌이다.

 

그런데 또 하나, 김 남희가 발견한 의 세례를 받은 특별한 자연물이 있다. 김남희가 특히 어떤 대상에 천착하는지는 빛과 자연 시리즈에 여실하다. 예술가들은, 특히 화가들은 자아를 투영하거나 동일시하는 대상을 반복해서 그리는 경우들이 있다. 화가 김 남희에게 그 자아의 페르소나는 바로 이다. 그녀 자신 화폭에 담은 각양의 돌들을 소개하며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언젠가 퇴촌 근처 계곡에서 작품소재를 찾아다니다가 돌들이 빛을 받아 이리저리 굴러서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모습에서 또 다른 자연을 발견하고 우직스러운 돌들의 모습에서 나를 보는 것 같아 돌을 그리게 되었다.

 

오늘도 자화상을 그리듯 돌을 그린다. ”그녀의 돌들은 우람한 바위나 말끔한 조약돌이 아니다. 그 돌들은 언제나 반쯤은 물에 잠겨있는 평범한, 도저히 돌 수집가의 눈에는 발탁되지 않을 그런 모습의 장삼이사(張三李四)같은 돌들이다. 태초에는 원시적인 거대한 돌이었겠으나, 어느 날 어느 곳으로 우연히 굴러가 그 곳에서 온갖 풍상과 침식에 마모되는 동안 이제는 어떤 변화에도 동요하지 않고 자신의 자리에 안착한 그런 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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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에게 다가온 생명

그녀의 돌들이 자리하는 곳은 항상 얕으막한 물가이다. 냇가 혹은 졸졸한 계곡물이 땅과 경계하는 가장자리에 반은 물에 잠긴 채로, 반은 햇빛에 부끄럼 없이 드러낸 나신(裸身)인 채로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존재감을 가지고 초연하게 있다. 돌이 잠긴 물은 깊지 않고 혼탁하지도 않다. 그래서 물에 잠겼다고는 하나 돌들은 빛이 통과한 투명한 물속에서도 자신의 존재를 숨기지 않고 빛 속에서처럼 드러낸다.

 

김 남희가 어느 정도 이란 것을 살아 낸 후 비로소 그림을 시작한 것과 그녀가 발견한 돌들이 이러한 모습을 띈 채로 화폭에 옮겨진다는 것 사이에는 서로 상관관계가 있을까. 그림을 보는 관객에게 과감한 해석을 맡긴다면 그렇다라고 단언하고 싶다. 천변만화하는 세상에서 언제나 경계를 넘나드는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조건을 수긍하고, 그 경계에 과감히 자신을 내주었지만 여전히 굳건한 자아를 지키고 있을 수 있는 이는 세상을 좀 살아나온 이뿐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 남희가 돌을 주제로 하는 빛과 자연 시리즈중에서도 이번 KPAM에 내놓은 작품들에서 단박에 느껴지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생명이 물가에 자작하게 잠긴 돌들 옆으로 다가왔다는 것이다. 물론 전에도 김 남희의 돌 옆에는 가끔 이름 모를 물풀의 모습을 한 생명이 출현했다. 하지만 주종은 역시 물과 돌의 변주가 많았다. 그런데 이번 미술제에서는 빛과 자연 - 생명을 전면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리고 이 생명들 또한 그녀의 돌들처럼 소박하다.

 

생명들은 생동감 충만한 화려한 군락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창포 꽃 세 송이, 노란 들꽃 한포기, 무명의 가느다란 물풀 한포기가 조용히 뿌리를 드리운 모습이다. 이 새로운 존재의 출현에 떠들썩한 만남의 기념비는 없다. 돌이 천년 세월의 간난신고를 내면에 응집한 채로 단단한 물질이 되어 과시(誇示)하지 않고 자리매김하듯 , ‘생명의 이름으로 다가온 것들 또한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던 배경처럼 무리 없이 조응한 모습이다.

 

이 생명들의 등장은 김 남희의 빛과 자연에 색채감을 부여한다. 그전 그녀의 화폭은 다소 무채색의 빛이었다. 하지만 이 생명들이 받아들인 또 다른 의 굴절이 그녀의 캔버스에 좀 더 화사한 조명을 비춰준다. 김 남희의 작지만 묵직한 자아인 의 내면에 또 다른 사유가 펼쳐지고 있는 낌새가 있는 것일까. 보다 확실한 것은 이후 김 남희의 회화적 행보를 보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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